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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도 한때 항구도시라는 걸 알았는데 지금이라도.....

작성자 : 벌교만 작성일 : 2023.01.23 17:17:06 조회수 :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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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아래의 내용을 보니 벌교도 일제시대 나름대로 항구역할을 했었나 본다.

그런데 상진항, 대포항, 장양항중 한곳이 내륙과 직결하는 포구역할을 했는가? 알수가 없다는 게 문제인거 같다.

만약에 그런 항구가 제주도로가는 항로도 만들고 거문도로 가는 항구로 발전했으며 벌교-녹동간 철도도 만들어져 또한 농수축산물 가공공장들이 세워졌더라면 벌교시승격에 보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군에서는 이런 역사의 한장면을 진상규명을 잘 밝혀져서 벌교에 무역항까지 개발은 안되어도 연안항이라도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전남동부권에서 유일하게 보성군이 제주도행 페지 운행을 않는 곳으로 적혀져 있는 것으로 있길래 생각해볼 문제 아닐수 없어 본다.

아니면 지방어항이나 어촌정주어항중 한곳에 다기능어항사업을 유치하여 마리나사업도 유치되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아닐수 없고 벌교도 한때 항구도시라는 걸 일제로부터 해방이후에도 잊지 않고 잘만 활용했더라면 삼천포, 통영등처럼 시승격되었을텐데......

부안 줄포는 일본으로 가는 국제항로도 있었다고 하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만들어 본다.


"현재는 해상 운송에 불리한 바다이지만 일제강점기 때 여수항을 보조할 목적으로 벌교를 개발하고 이곳의 포구를 전남 내륙과 여수항의 중계 지점으로 삼기도 했다." - 나무위키에서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유명해진 벌교 지역은 같은 보성군에 속하지만 성격이 조금 독특한 곳이다. 보성 사람들이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을 지녔음에 반해 벌교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벌교의 성향은 보성에 비해 조금 ‘반드럽다.’ 조선 시대에 고읍이나 낙안으로 드나드는 작은 포구였다가 일제 시대에 수탈 기지로서 일대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급속히 성장한 벌교의 역사는 그런 성향을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벌교는 오랫동안 낙안고을 고읍면에 속했으며 1908년에야 보성군에 편입되었다. 낙안고을의 변두리였던 벌교는 일제 시대에 보성과 고흥 일대의 물산을 실어내 가는 창구가 되면서 갑자기 커졌다." - 네이버 지식백과 답사여행의 길잡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 벌교는 보성·고흥·순천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또 내륙과 직결되는 포구가 있어 수탈을 위한 식민지 포구로 개발되면서 상업이 발전했다. 

이렇듯 벌교가 번화가인 덕에 일본인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숙소도 호황이었다. 당시 \'옛 보성여관\'은 5성급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의 규모였단다." -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 벌교읍에서 역사문학기행


벌교지역 항구현황
육지
상진항 - 지방어항
대포항, 장양항 - 어촌정주어항
섬(장도리일원)
대촌항, 부수항, 신갱이항, 오동항, 지주도항, 해도항
총 : 9개항으로 국가어항, 연안항, 무역항은 한곳도 없음(보성군 어항 갯수는 총 20개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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